여행은 언제나 가치 있는 일이다. 각자의 일상을 내려놓고 현대시인협회 회원들 80여명이 강릉으로 문학 기행을 떠났다. 회원들마다 이야기가 다르고 짊어진 배낭의 알맹이들이 다르지만, 우리는 한결같이 언제나 하나다. 이번 문학 기행에서도 “우리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임”을 확인하며 “현대시인협회”라는 하나의 울타리로 뭉쳐 있음을 확인하는 여행이었다.

아침 일찍 강변역에 집결한 우리들은 관광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동쪽을 향해서 달렸다. 강릉은 태백산맥을 넘어 동쪽 바다에 연해있는 청명한 도시다. 강릉을 생각하면 동해의 빛 밝은 바다가 출렁이는 곳, 신사임당과 이율곡, 허난설헌이 생각나는 곳이다. 강릉에 도착하여 순두부 전골로 점심을 마친 우리들은 한 문학관에 내렸다. 강릉에도 문학관이 있었다. ‘파초’의 시인 김동명 문학관(강릉시 사천면)이었다.

조국을 언제 떠났노/파초의 꿈은 가련하다//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너의 넋은 수녀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 밤이 차다/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 김동명,「파초」

   중학교 교과서에 게재되었던 이 시는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문학관에 들어서자, 해설사가 나와서 김동명 시인의 시세계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어릴 적 국어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 듯 한 기분이었는지, 시인들의 눈빛이 더욱 맑게 빛났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이들은 시를 쓴다고 했다. 예민한 감수성을 견디지 못하여 시를 썼던 김동명 시인과 그를 찾아간 현대시협 시인들의 만남. 영혼의 교류가 강처럼 흘렀다.

  우리는 김동명 문학관을 떠나 강릉 녹색도시센터(강릉시 초당동)로 이동하였다. 강릉의 엄창섭 시인뿐 아니라, 강릉시에서 현대시협 회원들의 강릉 방문을 환영하는 꽃다발을 이사장단에게 전달하였다. 강릉의 조미영 시인, 이연희 시인, 현대시협의 이수정 시인의 시낭송회에 이어 문학세미나를 가졌다.

   심상운 평의원이 좌장을 맡은 가운데, 1970년대와 1980년대 현대시사에 나타난 담론에 대한 문학세미나가 이어졌다. 1970년대 시의 담론은 <인간과 문학> 주간인 유한근 교수가 맡아주었다. 1980년대 시의 담론은 정신재 박사(현대시협 부이사장)가 맡아 주었다.

  유한근 교수는 1970년대 시의 담론으로 순수시와 참여시의 양대 산맥적 특징을 논하였다. 더불어 참여 논쟁과 리얼리즘, 모더니즘 논쟁과 무의미시 뿐 아니라 실험적 기교주의와 해체시의 태동 등을 특징으로 논하였다. 개인의 서정만을 노래하는 순수시와 현실참여시, 더 나아가 산업화 속에서 리얼리즘과 산업화 속에 상실되어가는 인간성과 부조리의 문제, 김춘수 시의 무의미시로의 변화를 1970년대 시로 담론하였고, 여기에 조명제 교수가 토론을 해주었다.

   정신재 박사는 1980년대 시를 서정주의시, 현실주의시, 모더니즘시로 삼분하여 담론하였다. 전봉건, 장호 등의 서정성과 이미지에 치중하는 시인들. 김남주, 고정희와 같이 불의한 현실에 직선적으로 저항하는 시인들. 조향, 문덕수와 같은 초현실주의 기법을 활용하는 시로 담론하였다. 이에 김운향 시인의 토론이 이어졌다. 1970년대와 80년대 시의 특질과 양상의 흐름을 공부하면서 현대시협 회원들은 진지하게 시의 담론을 청취하였다. 다음 가을 문학세미나에서도 문학 세미나는 이어질 것이다. 시의 시대적 흐름과 문학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공부하는 자세.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문학세미나였다. 모래 위에 성을 쌓을 수 없듯이 우리 회원들의 시작(詩作)의 바탕을 사유하며 시창작에 임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다음 날 우리는 아침 식사 후, 모정탑(강릉시 왕산면 대기리)를 탐방하였다. 이곳에 26년 동안, 3000여개의 돌탑을 쌓아 집안의 우환을 물리쳤다는 차옥순 여사의 이야기가 얽힌 길이다. 양쪽으로 돌탑이 쌓인 길을 40여분 동안 산책하면서 해설사의 조언대로 마음의 소원을 빌면서 걸었을 회원들. 각자의 마음 소원이 모두 다를지 모르지만, 차옥순 여사처럼 “시업(詩業)을 잘 쌓게 해 달라”고 하는 공통된 소원을 빌었을 것 같다. 점심 식사 후, 모정탑 바로 옆에 위치한 ‘커피박물관’을 방문하여 커피의 재배 과정과 커피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곳에서 제공해 준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 뒤 서울로 아쉬운 발길을 옮겼다. 문학 기행 후 작별할 때가 되면 아쉬운 마음 가득이다. 다음 가을 문학 기행(대전) 때 만나기를 고대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향기 넘치는 시 많이 쓰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가을 문학기행 때 다시 뵙게 되길 기도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