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시 총평>
시의 풍요로움과 새로움의 고뇌
조 병 무
1.
한국시 일 백년을 넘기면서 우리 현대시문학의 축포는 왕성한 시인들의 작품 욕에서 보여지고 있다. 시인의 수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질적 풍요로움도 우리 시단의 경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를 들어서면서 많은 문학 잡지나 문학 단체들이 앞 다투어서 문학의 위기에 대하여 담론을 나누고 있으며, 문학의 방향이 세기의 바뀜에서 오는 어떤 변화를 모색해야 되느냐에 대하여 토론을 나누고 있다. 다만 솔직하게 말하여 한국 시는 큰 변화를 싫어하는 가 보다.
이러한 문제의 제기는 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21세기에 나타나는 많은 문명의 이기와 그 문명의 이기에서 오는 인간 삶의 모체가 이 문명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체험되는 모든 요소는 엄청난 변화와 함께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 새로움이나 과거 현상과는 다른 이질적인 표현과 창작 요인이 나타난다. 특히 미술 분야나 건축 양식의 형태, 음악과 영화의 표현은 뛰어 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형상화한다.
새로운 세기가 오면서 인간의 생활 패턴을 바꾸어 놓았고, 그 생활 패턴이 인간의 사고 영역까지 뒤집어 놓고 있다. 그것도 빠르게 아주 빠르게 뛰고 뒤집히고 있다. 개인의 일상이 따르기 힘들 정도로 문명이 다가오는 이 앞에서 기존의 문화적 질서는 공포의 대상이다.
이 가운데서 유독 문학만이 기존의 질서와 방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머무르고 있다. 다만 표현 매체의 변화,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의 변화는 새로운 세대에 의해 시도되고 더러는 활성화되고 있다. 온라인의 세계에 떠다니는 많은 문학 매체는 분명히 그 활동 범위의 한계를 초월하고 표현 하고자 하는 인물의 변화도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오프라인은 요지부동이다.
이러한 양자간의 대립과 충돌은 문학 발전의 새로운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만은 사실이다. 기존의 문제의식에 천착하는가. 아니면 변화의 요소에 얼마나 적응하고 적용하는가 라는 문제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다.
시에 있어서 2004년의 풍요는 역시 어느 해 못지 않게 작품의 양적으로나 질 적으로 풍년이었다. 전국에서 발행되는 월간 문예지와 계간 문예지, 그리고 각 단체에서 발행하는 협회지, 동인지 등과 더불어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문학 사이드 등 그 양적으로 볼 때 풍년치고는 대 풍년이다. 인터넷을 통한 우수 문학 사이드를 선정하여 문예진흥원에서 기금까지 주는 특혜도 있으니 모든 점에서 문학의 발표지면은 풍년이다. 그러한 추세에다가 내년도에는 문예진흥원에서 선정된 문예지에 대하여 원고료를 전면 지원한다니 그 문예지의 선정 조건과 심사에 관심의 초점이 모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금년에는 시단의 원로들이 작품집을 발행하는 노익장을 보여 주는 해였다. 박태진『비에 젖은 민통선』 홍윤숙『지상의 그 집』 김남조『영혼과 가슴』 문덕수『문덕수 시99선』 김시철『금당계곡』 김지향『김지향시 99선』 함혜련『함혜련 시 99선』등 시인들의 시집이 시력 50여 년을 결산하는 작업으로 간행되었다.
여기에 월간『시문학』을 통하여 신작 특집으로 작품을 발표한 김시철, 정공채, 함동선을 비롯하여 송동균, 권기호, 김재흔, 박명자, 강준형, 박재릉, 이운룡 시인 등 60년대 등단 시인들의 완성한 작품 열을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금년에 발간된 중요 시집을 보면 박태진『비에 젖은 민통선』 문덕수『문덕수 시99선』김시철『금당계곡』 김두환『때 늦은 발견』 김지향『김지향시 99선』 함혜련『함혜련 시 99선』 유안진『다보탑을 줍다』 유승우『살과 뼈는 정직하다』 문효치『동백꽃 속으로 보이네』 김선영『쓸쓸한 것들을 향하여』 박현령『대청마루에 북을 두고』 강준형『목마른 사슴의 나들이』 오하룡『내 얼굴』강남주『등불을 앞 세우고』 박건웅『숨어 버린 마을』 김영진『심청가』 이향희『내 핸드백 속에는』김영희『초록의 말』 이무원『서하일기』 이하영『사랑은 달빛을 타고』 이애진『꽃이어서 행복해라』안재찬『서울별곡』 이재식『거두기』 임희자『사랑잎 나무』 박일동『시실리의 봄』 튜재상『파란 풀잎』 권숙이『거울 속 낯선 여자』 송정희『나는 무엇인가』 박장수『파란 비늘로 짠 시인의 꿈』 정삼일『혼자라는 것이 외로운 건 아니다』 이화은『절정을 복사하라』 김경하『귀초』 황다연『생명의 파도』 홍병선『꿈에 그린 자화상』 박상렬『지금, 그들은 은비령으로 간다』 최진연『사랑이 찾아 온 뒤에야』 배경숙『내 영혼의 살풀이』 이윤선『첼로가 갇힌 방』 강재혁『항아리가 있는 풍경』 도리천『어머니의 봄』 안수환『하강시편』 박명용『낯선 만년필로 글을 쓰다가』 신현봉『히마라야 가는 길에』 최재환『세월읽기』 이희자『작은 것과 어울려』 오삼록『얼음장 밑을 헤엄치는 빙어처럼』 김건일『뜸북새는 울지도 않았다』 류정숙『화려한 관』 장충열『연시, 그 절정』 도광의『그리운 남풍』 김년균『오래된 습관』 최금녀『내 몸에 집을 짓는다』 류정숙『은총의 날』 신화자『그리고 제8요일의 외간여자』 남용술『살』 이영자『그 여자네 집』 가영심『아름다운 동행』 이하영『사랑은 달빛을 타고』 신미철『까치소리 들리는 아침』 정복선『여유당 시편』 한문수『바람이 되고 싶다』 채운정 『이 모든 아픔을 또 다시』 양전형 『나는 둘이다』 한숙희 『청색으로 물든 저녁』등이 있으며, 시조집으로는 차경섭『시조의 향기』 윤금초『주몽의 하늘』 이상범『풀무치를 위한 명상』(무순)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월간『시문학』에 신작특집으로 발표한 시인으로는 송동균「지하철 휴게소」등5편, 정연덕「보길도의 갯바람」등 5편, 김종희「모진이는 오지 않고」등 5편, 박유라「봄비점묘법」등 5편, 이 솔「매듭놀이」등 7편,(03년10월) / 김년균「오래된 습관」등 5편, 최진연「도시의 밤 등 6편,」 이영춘「모순」등 5편, 백이운「지명」등 5편, 전길중「제5세계」등 6편,(03년11월) / 정공채「항구의 불빛은 멀다」등5편, 권기호「우포늪」5편, 전태규「유서」등5편, 김명숙「무제」등6편, 채재순「저 숲에 누군가가 있다」등 6편,(03년12월) / 함동선「저 무덤은」등5편, 설의웅「베다니의 마을」등 5편, 정기석「해금강 해돋이를 보고」등5편,(04년1월) / 김용언「적도를 가다」등 9편, 양준호「새의 容姿」등5편, 송시월「장교동길 11길」등 5편, 이순옥「친구」등 6편,(04년2월) / 김시철「사람 보시려거든」등5편, 임종성「디딤돌」등 5편, 배선옥「포르노 비디오」등 5편, 곽셜리「베를린의 장벽 앞에서」등 5편,(04년3월) / 심상운「종이그릇」등 6편, 안혜경「봄의 얼굴을 본다」등 5편, 최단천「낡은 옷」등5편,(04년4월) / 김재흔「고려청자 학문화병」등 5편, 김정기「싸움걸기」등 5편, 최만산「열두 계단을 오르며」등 6편, 서 량「떡갈나무의 본능」등 5편,(04년5월) / 박명자「눈물의 타임캡슐」등 4편, 송찬영「랩 가락 미제 아리랑」등 6편, 송문헌「시간의 낡은 인화지 속에서」등 4편, 이 솔「피리소리 들으며」등 4편,(04년6월) / 이해웅「보성차밭골」등 5편, 최성철「작은 집」등 5편, 김두자「캄보디아 국경지대」등 5편,(04년7월) / 강준형「묵비」등 5편, 이춘하「어떤 진보」등 5편, 김형오「다시 포세이돈이」등 5편,(04년8월) / 박재릉「가는 길」등 5편, 신 진「어디에 가도 너는 찾겠네」등 5편,(04년9월) / 이운룡「산새의 집에는 창이 없다」등 5편, 오현정「남새밭」등5편,(04년10월) 등의 작품이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예시는 한정된 잡지와 시집에 국한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 숫자에 몇을 곱해서 산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것이다. 얼마나 풍요의 잔치인가.
2.
그렇다면 금년도의 시의 면모는 어떠했을까? 많은 시인들이 각자의 시 세계를 꾸며 나가고 있는 실정에서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결국 관점의 대상은 자아의식을 주제로 한 심상의 테두리에 머물고 있다라는 말이 합당하다고 본다. 결국 시는 시인의 본성을 떠나서는 존재치 않는다는 기초에 그대로 안주하고 있기 때문일까.
많은 작품집과 특집을 통해서 몇 가지 특이한 형상을 살펴보고, 금년 시단의 담론을 풀어 갈 수 있는 특성을 찾아 나서 보자.
첫째 역사적 아픔과 고통의 형상물에 대한 관심이다. 역사적 조형물이나 그 조형물과 사회적 현실과의 접목에서 무엇을 유추하고 추구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과 그 역사적 실존에서 발견되는 실상은 과거와 현재에 대하여 무엇을 조명하고 말해 주려는가 라는 긴장된 내면을 파고드는 것이다. 박태진 시인은 시「비에 젖은 민통선」에서 <오랜만이요. 저기 민통선 안녕 / 과연 사람은 망각의 名手 / 역사는 슬프지도 화려하지도 / 묵묵히 비에 젖는 50년아, 말이 없다(작품의 4연에서)>라는 침통한 역사적인 실상을 조명한다. 김년균 시인의 「춤추는 디엠지(DMZ)」「분단시대의 탄피」에서 <잡귀야 물러가라! 당장 물러가라! /..../ 분단이여, 총탄이여, 이 쓸데없는 것들이여, / 이제는 제발 세상 밖으로 떠나버려라.>라는 역사의 고통을 절규한다. 이러한 분단의 비극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비극 속에 살아가는 시인의 절규이며 우리 민족의 역사적 현실이다. 시인은 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둘 째 특정 지명이나 특정 현상과 사고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엿 보인다.「강원도」라는 지명을 소재로 작품을 발표한 김시철 시인은 56편의 작품을, 유승우 시인 역시 23편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대체로 강원도가 내포한 여러 각도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 중에서 김시철 시인은 강원도라는 풍물에서 인간적인 심미감각에 자신을 던져 넣고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유승우 시인은 자연 풍치에 매료되는 기묘한 심상을 절절히 보여 주고 있다.
연작시 형태의 특정한 사고와 이미지에 대한 관심과 이를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경향이 특히 많았다고 볼 수 있다. 문효치 시인의 「사랑법 혹은 「빛」「손에 관한 명상」「아픔」「울음」「바다의 문」등 각 5편에서 62편, 박현령 시인의「둥둥 낙랑둥」「그의 방」「그의 이야기」「잃어버렸던 미소」등 4편에서 7편, 최진연 시인은「사이버 시대」「여름시편」3편에서 10편, 안수환 시인은 「하강 시편」에서 하강 이미지를 164편의 연작으로 발표, 최재환 시인은「들꽃에게」17편, 가영심 시인은「나의 예수」17편, 박상렬 시인은「은비령」을 서시에서 사계절에 대한 시편을 7편, 양전형 시인은「‘일월’부터 ‘십이월’」까지의 일년의 작품을 12편, 임희자 시인은「시에 대하여」6편, 최금녀 시인은「마야문명」4편, 그리고 강준형 시인은「신공무도하사」14편을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소재와 시적 관심은 지금까지 시작품에서 보여 온 단편적인 이미지의 함축에서 연작시의 효과에서 기대할 수 있는 관심의 폭을 넓히고 이미지의 단순성에서 벗어나 깊은 통찰과 대상에 대한 무한의 정신적 매체를 축출하여 미적 감각의 완벽함을 기하려는 시인의 노력이 여실하게 보인다고 하겠다. 한 편의 단시로는 시인의 감성을 보이기에는 오늘이라는 문명적인 요소가 너무나 긴박하고 그 호흡이 길고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물을 사고하는 영역의 단위와 범주가 내외적으로 폭이 무한의 상황으로 펼쳐져 있는 상상의 힘에 따른 기대치가 커졌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셋째 시집이 주는 제목의 암시이다. 다소 낮선 느낌까지 드는 듯한 제목이면서 오히려 강한 암시를 띄우고 있는 시집 제목에서 단순하지 않는 새로운 사고 영역을 제공한다. 박명용 시인의 『낯선 만년필로 글을 쓰다가』 이윤선 시인의『첼로가 갇힌 방』 신화자 시인의 『그리고 제8요일의 외간 남자』 권숙이 시인의 『거울 속 낯선 여자』 오삼록 시인의 『얼음장 밑을 헤엄치는 빙어처럼』 이향희 시인의 『내 핸드백 속에는』 등에서 시대적인 일상성을 외면하지 않는 강한 이미지의 충동을 얻게 된다. 어쩌면 이러한 제목에서 시인의 미적 감수성을 읽을 수 있고, 작품의 독특한 주제의식과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이점도 있으나 그것은 반드시 그 제목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넷째 일상적인 감성을 그대로 나타내는 제목에서 정서적인 감성과 미적 교감을 느낄 수 있다. 유안진 시인의 『다보탑을 줍다』 김건일 시인의 『뜸북새는 울지 않았다』 한문수 시인의 『바람이 되고 싶다』에서 단정적인 서술어를 전체 이미지와 접근하고 있으며, 다소 감성적인 제목으로 김선영 시인의 『쓸쓸한 것들을 향하여』 도광의 시인의 『그리운 남풍』 강남주 시인의 『등불을 앞세우고』 이희자 시인의 『작은 것과 어울려』 박건웅 시인의 『숨어 버린 마을』 배경숙 시인의 『내 영혼의 살풀이』 황다연 시인의 『생명의 파도』 장충열 시인의 『연시, 그 절정』에서 감성적인 감각이 노출된 제목이다.
우리의 현대시에서 제목이 주는 일상적인 요소는 의외로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대체로 제목은 하나의 단어나 몇 개의 체언형이나 명사형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의 시집이나 시작품의 제목에서 구체적인 주제나 이를 암시하는 의외의 제목이 많아졌다. 이러한 문제 역시 시대나 사회적인 흐름의 문제와 사람의 사고 영역의 확대와 교감,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회적인 요청인지도 모른다. 특히 시집의 제목에서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3.
위에서 시집을 통한 일년간의 몇 가지 특성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일년의 신작시의 흐름은 어떨까. 이을 조명해 보는 자료로 월간 『시문학』에서 발표된 신작특집이 좋은 텍스트가 되기에 이를 참고로 하여 관심을 살펴본다.
역시 시의 풍년이다. 과거의 자연 친화적인 흐름을 오늘날에는 환경 문제로 전이되어 자연 조건의 현상을 환경 조건과 결부하여 인간의 생명력과 관계를 설정한다. 그래서 환경과 생명의 관심이 시인의 작품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권기호 시인의「우포늪」 이운룡 시인의「산새의 집에는 창이 있다」김종희 시인의「그냥 풀처럼」에서 인간과 자연 조건은 하나가 된다. 동일한 의식의 값어치를 발견한다. 시인들은 한결같이 <솔바람 즈믄 몸짓도 / 다가 설 수 없는 / 원초적 설움 누운 곳에서 나는 언어의 빈 그물을 울고 있는 것이다.(권기호)> 원초적 본능 앞에서 언어의 빈 그물로 울고 있는 하나의 생명력의 몸짓으로 늪에 잠긴 별빛의 역사를 말해 주려고 한다. 그러면서 <몸을 줄이고 뼛속까지 비워서 가벼운 새, / 그 중 뼈 몇 개 추리고 또 추려서 / 얽어맨 산새들만 들락거린다(이운룡)> <오직 생명뿐이니 / 그 원을 들어 주려고 나는 매일 / 혼자 이 적막한 산을 오르내린다 / 그냥 풀이 바람에 나부끼듯이(김종희)> 하나가 된다. 많은 문명적 요소가 인간의 환경을 등한시한다. 문학의 영역 역시 이러한 문제 의식을 생각하고 자각하는 과정이 절실해 진다.
시인에게는 인생에 대한 관조란 무엇일까. 많은 시인들이 오랜 세월동안 인생을 이야기하고 인생을 정의하고 하였으나 그 인생은 또한 시인들의 가슴에 그대로 누적되어 나타난다. 김시철 시인의「사람 보시려거든」 함동선 시인의「저 무덤은」 정공채 시인의「항구의 불빛은 멀다」 박재릉 시인의「가는 길」 박명자 시인의「눈물의 타임캡슐」 김년균 시인의「오래된 습관」에서 인생의 현실감각을 느낀다. <저 무덤은 / 결국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일 뿐인데(함동선)> <너와 함께 그리움에 젖고 있는 항로가 / 비 쏟아지는 날에도 쉼없이 / 떠돌기만 한다.(정공채)> <내일 아침 이슬길 / 죽는 날이 보여 / 눈썹 없는 한량 하나를 / 이승 끝 길목에 세우다(박재릉)> <내 무덤으로 곧바로 돌아왔다(박명자)> 결국 인생의 근원적인 목적지로 돌아오고, 또 다시 회기하기도 하는 인생의 엄숙한 통찰이 깃들어 있다. 시는 인생의 문제에 대하여 예민하고 그 인생의 문제를 조명하게 된다. 물론 모든 시 영역은 인생의 관점을 살피는 것이고, 인생의 표현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시의 새로움은 표현에 있다. 기존의 기법이나 표현 상식을 이탈하여 사물 보기를 어떤 관점과 어떤 앵글로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그 모양은 달라진다. 적극적으로 시의 구도를 새롭게 찾아보고 일반적인 언어 관습을 벗어나 사물의 전후 좌우 측면에서 그 형상이나 사고를 꿰뚫어 보는 정신적인 모체가 시에서도 필요하다. 송문헌 시인의「시간의 낡은 인화지 속에서」 이춘하 시인의「초록그물을 치다」 이 솔 시인의「피리 소리를 들으며」 박유라 시인의「달동네」등에서 언어 감각의 운치와 절묘하게 가감하는 언어미가 있다. 송문헌 시인의 언어에서는 전체 구성의 시어가 구사하는 구도의 생동감이 있다. 이미지의 동적인 움직임이 생경하지 않고 밝다. 이춘하 시인의 언어의 자유로움이 돋보이고 일상어의 격을 상승시키는 발랄한 언어감각이 퍽 활동적이며 힘이 있다. 이 솔 시인은 사물을 꿰뚫어 보는 긴장감이 있다. 위의 작품에서 피리 소리의 흐름을 형상화하는 언어 표현이 새롭다. 박유라 시인의 시에서 일상적인 언어의 밝음과 쏟아지듯 한 율동감을 느낄 수 있다.
풍자적인 시의 표현에는 그 사실에 대한 강한 사고가 깃들어야 한다. 정치적인 난감에서 오는 시인의 특유한 아이러니와 위트가 시의 정감을 더해 주고 있는 시작품 이춘하 시인의 「어떤 진보」가 시대 감각을 절충시키고 있다.
진달래는 알아도 할미꽃은 모른다는 386세대
오십년 삼겹살 불판은 갈아야 한다는 정치인
경계에 서있는 어느 교수에게 안중근 평화상을 안겨준 기념사업회
청국장은 먹지 않으나 햄버거는 매일 먹는다는 청소년
미군만 물러가면 이 땅에 통일이 올 것이라는 촛불시위자
엥겔지수가 자기만큼 높은 사람 없을 거라는 어느 시인
(아아, 나는 무정부주의자가 좋다)
우리 시대는 도덕과 윤리가 상실하고 있다. 특히 정치 일선에 나타난 초년 정치생들의 무례는 도를 넘은 한 해였다. 시는 언어예술이기에 더욱 그들 초년 정치생들이 쏟아 놓은 언어의 무절제와 무자비성은 사회의 큰 흠이 되었다. 위의 작품은 금년 우리 시대 감각을 잘 나타낸 작품으로 사회적 관심과 역사의 흐름을 직시한 2004년을 함축한 의미가 담겨 있어 맺음으로 시의 전문을 음미한다.
그 외에 기행에서 돌아와 쓴 기행시의 풍이라든가 도심의 긴긴 문명적인 요소나 변화의 일면을 작품으로 보여지는 경우라든가. 역사적인 사물이나 행적에 관한 관심의 문제도 그것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라는 문제는 거론의 핵심이 되나 지면 관계로 미루었다. 시인이 도심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도 과거 회상적인 형식만이 아니라 새로움에 대한 충격이나 변화의 놀라움을 표현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일부 언어적인 흐름을 시적 형식이나 기법으로 표현하였다하여 시라는 명칭으로 명명하는 일부 신문의 호들갑스러운 보도태도는 고쳐져야 할 것이다. 시는 넋두리가 아니며 말의 유희가 아니다. 시는 엄연한 시인의 깊은 시적 정신이 깃들여야 하고 문학이 지니는 감성이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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