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창한 봄날
최진연
어느 날 아기 젖꼭지만한 꽃봉오리들이
진달래 나뭇가지에 돋아나서
날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부풀어 오르더니
머리꼭지가 면도날로 살짝 그은 듯이
붉은 색 실금으로 벌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는 발걸음을 보여주는 듯이
그 겉껍데기가 조금씩 벌어지면서
날마다 아주 조금씩 드러내던 혈색 고운 얼굴
수줍어 수줍어하더니 마침내
함박웃음의 꽃으로 활짝 피어났습니다.
그런 어느 날 나는 가장 많은 꽃들을 볼 수 있는
정원에 서서 한 동안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아주 밝고 연한 분홍색 구름들이 내려앉은 듯
잔칫날 차일을 친 듯 피어난 벚꽃들
관능의 누드처럼 다가왔다 떠나는 목련꽃
시간이 지나가는 발자국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산기슭의 진달래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화전놀이하던 처녀들의 연분홍 치마
그 곁에 핀 개나리꽃들은 노랑 저고리,
꽃들은 한 폭의 정물화로 걸려있는 내 유년의
고향으로 되돌아간 나를 알몸으로
황홀한 기쁨의 욕조에 잠기게 했습니다.
*카페 관리자님, 이 시 "시간이 지나가는 발걸음" 앞 부분에 부호와 숫자가 자꾸 입력되어 나타나는데, 수정을 쳐서 지우려고 하면 전혀 뜨지를 않으면서 실제 글에는 계속 뜹니다. 그 부분을 지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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